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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무리] 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 필립 얀시 |
슬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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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열두 단계 모임(교회, 나의 고민 나의 사랑 중에서)
이런 유형의 교회는 어떤가?
언젠가 가 본 이 교회는 사무처도, 급료를 받는 직원도 없이 매주 엄청난 수의 헌신적인 회원들을 불러들인다. 이 교회는 '익명의 금주회'(Alcoholics Anonymous)라는 이름으로 통한다. 나는 한 친구의 권유로 이 교회를 방문하게 되었다. 이 친구는 내게, 자신의 음주문제를 고백하며 말했다. "가보니까 그렇게 좋을 수 없더군. 자네도 가 보면 거기서 아마 초대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네"
월요일 밤 열두 시에 가 본 그 교회는 다 쓰러져 가는 어떤 집이었다. 그 날 그 집에서는 이미 여섯 차례의 모임이 있었다. 실내는 매캐한 담배연기로 눈을 뜨기조차 어려웠다. 그러나 내 친구가 왜 그 모임을 초대교회에 견주었는지 나는 곧 알 수 있었다.
거기에는 유명한 정치인 한 사람과 알만한 몇몇 거부들이 꺼칠한 실업자들이나 팔뚝에 주사자국이 선명한 건달 소년들과 스스럼없이 섞여 있었다.
그들은 한 사람씩 나와서 자신을 소개한다.
"안녕하십니까, 내 이름은 아무개입니다. 나는 알콜중독자이고 마약중독자입니다."
그러면 나머지 사람들은 일제히 환영한다.
"아무개 씨 반갑습니다!"
통상 '나눔의 시간'이라 불리는 교제 순서는 소모임 운동의 전형으로 내세워도 좋을 만큼 모범적이었다.
그들은, 최대한의 연민을 가지고 경청하며, 따뜻하게 응답해 주고, 여러 차례 손을 잡거나 어깨를 두드려가며 서로를 격려했다.
참석한 사람들은 각각 그런 식으로 중독증과의 싸움에서 얼마만한 진보가 있었는지 보고했다.
우리는 많이 웃었고 많이 울었다.
회원 대개가 자신들의 문제를 알아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그 시간을 즐기는 듯했다. 거기서 뭔가를 숨기거나 거짓말할 이유는 없었다. 다들 동병상련의 처지였던 까닭.
'익명의 금주회'는 별도의 재산도, 사무처도, 방송실도, 비행기 타고 돌아다니며 상담해주는 투자전문가도 없었다. 이 모임의 설립자들은 애초부터 관료화 경향을 철저히 배격했다. 요컨대 그것은 회원들 상호간의 근본적인 관계, 곧 상대방을 위해 헌신하겠다는 마음에 바탕할 때에야 이 모임이 유지될 수 있다는 신념이었다.
확실히 이 모임에는 조직이나 행정이 없으며, 오직 한 사람의 알콜중독자가 또다른 중독자를 위해 헌신하는 근본적인 마음만이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익명의 금주회'는 엄청난 효율성을 자랑한다.
초콜렛 중독자 모임에서 암환자 모임에 이르는 기차 250여 개의 열두 단계 소모임들이 익명의 금주회의 원리와 방법을 의식적으로 모방해 앞다투어 생겨났던 것이다.
이 모임이 여러 면에서 초대교회와 닮았다는 사실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 모임의 기독교인 설립자들은 초기부터, 하나님께 의지하는 정신을 모임의 의무적인 태도로 못박았다.
내가 참석한 그날 밤, 회원들은 한 음성으로 열두 단계를 거듭 외쳤는데, 그 내용은 하나님께 전적으로 의지하여 용서와 힘을 구하겠다는 수락이었다.
내 친구는, 가끔씩 고민하긴 하지만 이제 교회 대신 이 모임을 다닌다고 스스럼없이 말한다.
"이 모임은 교회로부터 몇몇 용어와 개념을 비롯한 사회학을 빌려왔는데 중심적인 교리는 없다네. 나는 그 점이 아쉽기는 하지만 어떻게든 극복하려고 노력하고 있네. 그리고 이 모임은 알콜중독과 싸우는 나를 엄청나게 도와준다네. 지역교회는 비교가 안 되지."
이 모임의 또다른 회원들은, 교회에서 거부당하고 비난받은 과거의 사연을 들어가며 지역교회에 대한 거부감을 표했다.
"안녕하십니까, 나는 아무개입니다. 나는 알콜중독자이고 마약중독자입니다."
이렇게 그들이 스스럼없이 고백을 할 수 있는 장소는 결단코 지역교회는 아니었다.
내 친구의 입장에서 보자면 익명의 금주회는 그야말로 구원이었다. 교회를 포기하고 그 모임에 다닐 정도라면 그가 얼마나 절박한 심정으로 거기에 매달렸는지 알 수 있다. 그는 이제, 여기서 다시 옛 습관으로 돌아가면 머지않아 무덤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가 술의 유혹과 싸우며 밤을 지샌 것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술이 먹고 싶어 심양영업을 하는 식당에까지 갔지만 그는 필사적으로 싸웠다. 반성문을 쓰는 아이처럼 구부리고 앉아 빈 공책 한 권을 다 채웠다. "하나님, 여기서 오 분만 더 참게 도와주십시오".
공책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한 문장이었다. 그래도 안되면 모임에 같이 다니는 친구에게 전화했다. 내가 이러고 있으니 와서 도와달라고. 친구가 올 때까지, 그는 오분씩 버텨나갔다. 친구는 그가 부를 때마다 달려나갔다. 새벽 네 시에, 말하자면 거의 벼랑 끝에 와 있는 그를 익명의 금주회가 붙들고 있는 것이다. 지역교회를 비롯한 세상의 어느 단체도 도움이 안 되는 상황에서 그 모임이 그를 도왔다면 구원은 따로 없다. 문자 그대로 그의 정신과 육체를 살려내는 구원, 그에게는 그것이 익명의 금주회였다.
그 심야교회를 나오면서 나는 두 가지를 느꼈다.
우선은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착잡했다.
어찌 보면 지역교회가 할 일을 익명의 금주회가 하고 있으므로 착잡했다. 지역교회는 적어도 내 친구의 어떤 필요만큼은 채워주지 못했던 것이다. 나는 그 친구에게, 지역교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 모임의 장점이 무엇인지 물었다. 그는 앞에 놓인 커피잔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커피는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다.
'지역교회에는 없는 사랑이 여기에는 있다, 혹은 지역교회에서 안 받아주는 우리를 여기서는 받아준다, 혹은 여기서는 나를 알아준다 하는 식의 얘기'. 아니면 '조금 특수하지만 반관료주의나 반제도주의 정도의 얘기'가 나올 줄 알았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조용히 흘러나온 한 마디는 의지(dependence)였다.
그러니까 이 모임과는 달리 지역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마음을 볼 수 없다는 얘기였다.
그는 좀더 자세히 설명했다.
"사실 우리 힘으로는 할 수 없지. 그래서 예수님이 오신 것 아닌가? 그런데 교회 사람들은 대체로 자만의 냄새를 풍기고 있네. 자기들은 누구를 의지하지 않아도 독실하고 우월하다는 얘기겠지. 나는 그들에게서 하나님을 의지한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네. 하나님은커녕 자기들끼리도 의지하고 있지 않지. 또 그들의 삶은 당당하고 안정돼 보여서 알콜중독자들이 거기 가면 열등감밖에 느낄게 없다네."
그는 잠시 말을 쉬다가, 입가로 주름살이 지도록 소리없이 웃으며 덧붙였다.
"이상한 일이지만, 내가 그토록 증오하던 알콜중독 때문에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다시 찾게 되었네. 하나님이 꼭 술을 이용해서 나를 되찾은 것 같더군. 그래서 나는 하나님 없이는 살아갈 수 없음을 알지. 나는 날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술과 싸울 수 있다네. 글쎄, 그런 뜻에서라면 알콜중독도 나를 구원하는데 한몫 한거 아닌가? 하나님이 우리 같은 중독자들을 부르신 것은 다른 성도들에게, 그분을 의지하는게 무엇인지, 이 땅에서 그 분의 공동체를 의지하는 게 무엇인지 가르치라고 하는 거 아니겠나!"
내 친구가 다니는 심야교회에서 나는 겸손과 정직의 마음을 보았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을, 동병상련의 친구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전적으로 의지하는 마음을 배웠다. 아마 예수께서 당신의 교회를 처음 세울 때 생각하신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마음들 아니었겠는가!
역사학자 어니스트 커츠에 따르면, 익명의 금주회는 빌 윌슨이라는 이가 밥 스미스라는 박사와 처음 만나 생각해냈다고 한다. 빌은 육 개월간 자력으로 술을 참고 지냈다. 그런 와중에 사업차 지방출장을 가게 되었는데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낙심천만으로 호텔 현관을 배회하던 그는 귀에 익은 소리를 들었다. 가까운 곳에 모여 앉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술잔 부딪히는 소리. 잠시 피해있던 그 소리들이 그를 주점으로 돌려 세웠다. 아무래도 한 잔 안하고는 못 배기겠다고.
그러나 그는 가던 발걸음을 돌연 멈추고, 전에 없던 생각에 사로잡혔다.
'아니야, 내게는 술이 필요없어. 이제부터는 술이 아니라 술중독자를 찾아다니겠다!'
그는 급히 방향을 바꿔 현관 공중전화 박스로 갔다. 그리고 몇 차롄가 물어물어 스미스 박사를 찾았다. 그래서 빌 윌슨과 밥 스미스 박사는 익명의 금주회의 설립자가 되었다.
"내게는 이제 죄가 필요없다. 이제부터는 죄가 아니라 죄인을 찾아다니겠다!"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이 말을 할 수 있는 곳이 교회다!
함께라면 우리는 아마 끝까지 서로를 지켜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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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
｜ 21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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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랜교 개편하면서 한 분이 톡방에 올려주신 글인데, 읽으면서 랜선교회 생각이 나셨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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