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p) 육체가 내리는 판단도 정신이 내리는 판단 못지않게 가치가 있는 것이다. ... 우리는 생각하는 습관보다 살아가는 습관을 먼저 배워서 익힌다.
23p) 삶의 부조리는 과연 희망이라든가 자살 같은 길을 통해서 삶으로부터 벗어나기를 요구하는 것일까?
25p) 집요함과 통찰이야말로 부조리와 희망과 죽음이 서로 응수하며 벌이는 비인간적 유희를 구경하는 특권적 관객들이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정신은 기본적인 동시에 미묘한 그 춤의 갖가지 모습들을 예증하고 또 그것들을 스스로 체험적으로 살아 내기에 앞서 그것들을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27p) 우리에게 한 인간은 영영 알 수 없는 존재여서 그 속에는 항상 우리의 인색 능력을 벗어나는 환원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은 아마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알고 있고 그들이 하는 행동, 그들의 행위 전체, 그들이 삶을 거치면서 야기하는 결과를 보고서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맞히게 된다. 이와 마찬가지로 도무지 분석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모든 비합리적 감정도 나는 실질적으로 정의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그 결과를 지성의 범주 안에 종합하고 그 모든 모습을 파악, 기록하고 그 감정의 세계를 재구성함으로써 평가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배우를 수백 번 보았다고해서 개인적으로 그를 더 잘 알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가 연기한 극중 인물들을 모두 종합하여 생각해 보면서 백번째 인물에 이르고 보니 그를 좀 더 잘 알게 되었노라고 말한다면 거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표면적으로는 역설 같지만 이것은 하나의 교훈적 우화인 것이다. 거기에는 어떤 교훈이 담겨 있다. 한 인간은 그의 솔직한 충동에 의해서와 마찬가지로 그가 연기하는 연극에 의해서도 정의될 수 있음을 가르쳐 준다.
28p) 부조리라고 하는 이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감정을 우리는 아마도 지성, 삶의 예술, 아니, 바로 예술 그 자체라는 서로 다른 그러나 친근한 세계들에서 포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우선 시초에 부조리의 풍토가 있다. 끝은 바로 부조리의 세계와 정신적 태도다. 그 정신적 태도가 그에 고유한 어떤 빛으로 세계를 비추고, 그것이 알아볼 줄 아는, 그 세계의 특권적이고도 무자비한 얼굴이 그 빛을 받아 환하게 드러나게 만드는 것이다.
35p) 만약 인간의 사고가 뭇 현상들의 변화무쌍한 거울 속에서, 그 현상들을 요약하고 그 자체도 단일한 원리로 요약될 수 있는 영원한 관계를 발견할 수만 있다면 우리는 정신의 행복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36p) 이 통일성의 향수, 이 절대의 갈망은 인간이 겪는 내면적 드라마의 본질적인 움직임이 어떤 것인가를 여실히 보여 준다.
41p) 그러나 부조리한 것은 바로 이 비합리와, 명확함에 대한 미칠것 같은 열망의 맞대면이다. 그 명확함에 대한 호소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메아리친다. 부조리는 인간과 세계에 똑같이 관련된다. 지금으로서는 부조리만이 그들을 이어주는 유일한 매듭이다.
56p) 그가 경험속에서 찾아낸 것이라곤 자신의 무력함의 고백뿐이다. 그 어떤 만족스러운 원리를 이끌어 낼 아무런 구실도 찾아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당한 이유도 제시하지 못한 채 - 그 자신이 이렇게 말한다. - 단숨에 초월적인 것, 경험의 존재 그리고 삶의 초인적 의미를 동시에 단정하면서 이렇게 쓴다. "실패가 가능한 일체의 설명과 해명을 초월하여, 허무가 아닌 초월적인 존재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면 무엇인가?" 돌연히 그리고 인간적 믿음이라는 맹목적인 행위에 의해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 존재를 그는 "보편적인 것과 개별적인 것의 상상할 수 없는 통일"이라고 정의한다. 이리하여 부조리는 신이 되고, 이해의 무능력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밝혀주는 존재로 돌변한다. ... 그리고 역설적으로 초월자의 경험을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돌리려는 야스퍼스의 고집과 무한한 인내를 우리는 이해할 수 있다. 왜냐하면 초월자에 대한 접근이 어려울수록 그것을 정의하는 것은 더욱 무용한 것으로 밝혀지고 그 초월자는 그에게 더욱 현실적일테니 말이다. 왜냐하면 결국 초월자를 긍정하는데 바치는 열정은 바로 그의 설명 능력과 세계 및 경험의 비합리성 사이의 거리와 정비례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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