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p)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은 그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사피어-워프 가설은, 언어를 통해 사고가 형성된다는 주장이다.
39p) 사피어-워프 가설대로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이 사용하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면, 선형적·순차적·시간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나와 달리 동시적·다층적인 언어를 구사하는 농인들은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이해할까? 만일 내가 농인처럼 자유자재로 수어를 구사하게 된다면, 지금까지와 얼마나 다르게 사고할 수 있을까?
45p) 자유라는 단어가 없어지면 자유가 사라지고, 차별이라는 단어가 없다면 그것이 차별인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다.
71p) 처음 농아인 협회 건물 앞에 선 그날도 나는 수어학원을 하나의 섬이라 생각하기로 했다. 수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하고 공부하고 먹고 놀기도 하는, 언어와 문화와 생활방식이 완벽하게 독립적인 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농인인 섬이, 그래서 제1의 언어가 수어인 섬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75p) ... 실제로 이 섬이 어디에 있는지는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이 섬들은 본토의 각주 취급을 받고, 없어도 별 상관없는 곳으로 간주된다. 그렇지만 훨씬 흥미로운 곳이기도 하다. (_유디트 샬란스키. "머나먼 섬들의 지도")
세상에는 내가 알지 못하는 너무나 많은 섬들이 지도의 가장자리로 밀려나 있을 것이다. 수어를 배우기 전 내게 농사회가 없어도 별 상관없는, 내가 그려온 삶의 지도 바깥에 존재하는 머나먼 섬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다만 스스로 고립시키지만 않는다면 우리는 충분히 서로의 섬에 닻을 내릴 수 있다.
89p) '코다'라는 단어가 있다는 건 나와 같은 삶을 살아온 사람이 또 존재한다는 뜻이니까. 농인 부모의 자녀로 살면서 겪은 혼란이 나 혼자만의 경험이 아니라, 이 세상에 나를 이해해줄 사람이 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94p) 하얀 손이 햇살 아래에서 곧고 깨끗하게 움직인다. 뒤이어 두 손이 허공에서 반짝인다. 소리가 없는 세계에서 '박수'는 손뼉을 치는 대신 양손을 올려 별처럼 반짝이는 동작으로 표현한다. 반짝반짝. 박수 소리가 반짝인다. 화면 가득 소리없이 반짝이는 박수를 보고 있으니 어쩐지 환대받는 기분이 들었다. 어서 오라고, 기다렸다고. 농세계엔 이런 반짝이는 언어가 있다고. 우리의 삶도 당신의 삶처럼 반짝인다고.
그러면 나는 화답하듯 손을 들어 올린다. 반짝반짝. 손에서 박수 소리가 반짝인다.
122p) 정혜윤에게 메모가 쓴 대로 살아지는 기적이라면, 나에게 글은 '이렇게 살겠다'는 선언이다. 내가 살아내고 싶은 말을 글로 써서 하는 약속이다. 채식을 하겠습니다,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장애인을 차별하지 않겠습니다. 나의 관성이 나를 이전으로 돌려놓지 않도록, 내가 쓴 글에 책임을 지고 살도록, 남의 시선을 의식해서라도 쓴 대로 살기 위해서다.
134p) 좋아하는 마음은 그러니까 포기하지 않는 마음, 지켜내고 싶은 마음이다. 포기하지 않는 사람만이 이야기를 쓴다. 지켜내고 싶은 책임감이 글을 쓰게 하니까. 그렇게 쓰인 이야기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었던 영역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올리버 색스의 책장에 꽂힌 수많은 책이 그를 박동하는 농세계로 안내한 것처럼, 올리버 색스의 책이 나를 갤로뎃 시위의 한복판으로 데려간 것처럼 말이다.
139p) 집으로 돌아온 나는 서둘러 노트북 앞에 앉았다. 내가 보고 이해한 사실을 잊어버리기 전에 기록하고 싶어서였다. 누군가에겐 그리 대단하지 않은 발견일 수 있는 이 경이로운 언어의 매력을 선명하게 전하고 싶었다. ... 하지만 3차원의 공간을 활용하는 입체적이고 시각적인 언어를 2차원적인 문자언어로 묘사하기엔 해상도가 낮았다. 글을 쓰는 내내 내가 가진 언어와 고작 이렇게밖에 표현할 수 없는 나의 한계를 실감해야 했다.
식물의 세계에 절대 정착할 수 없는 이방인 입장에서 나는 얼마나 그들의 내부에 접근할 수 있을까? _호프 자런 - 랩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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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함께 이제 막 내 인생이 변화했다는 사실이 서서히 실감 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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